
글 : 윤강로
現 국제스포츠외교연구원장
국제정구연맹(ISTF) 상임고문
한국 스포츠외교 포럼 이사
스포츠포럼 21 운영이사
1. 대한체육회 국제사무차장
2. 2008 올림픽 한국최초 IOC평가위원
3. 평창 2010~2014유치위 국제 사무총장
-평창2018유치위 국제자문역
4. 평창 2018조직위 위원장 보좌역
5. 몽골국립스포츠아카데미 명예박사학위
6. 중국인민대학교 객좌교수
7. ANOC 공로훈장 한국최초수상자
8. 총성 없는 전쟁 및 스포츠 외교론 등 7권 책 출간
2020년, 대한민국 체육계는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 상황으로 인해 강제 동면에 들어갔다. 엘리트 스포츠 경기들이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다 취소되는 것은 물론, 세계 각국의 유명 선수들이 참석하는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도 기약이 없어졌으며, 수많은 생활체육인들은 바이러스 전파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되었다. 예기치 못했던 어려움에 좌절하고 실의에 빠지는 사람도 있지만, 숙고의 기회로 삼고 공부하여 도약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과거 김대중 전대통령이 억울한 옥살이 과정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수없이 책을 읽어 IMF 국난 극복의 원료로 삼았던 일을 기억할 만 한 시기이다.
원하지 않는 휴식 기간 동안, 대한민국 체육계는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수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올해를 뒤흔들었던 사건 중 하나로 한 스포츠 스타가 폭력에 못 이겨 목숨을 끊은 일을 기억한다면, 앞으로 대한민국 체육계는 어떤 모습으로 변해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시급하다. 그런데 문제는 체육계의 변화에 대한 정부와 체육인, 일반 대중 간에 공통의 컨센서스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까지 많은 논란을 빚고 잇는 스포츠개혁권고안을 살펴보면 정부가 의도한 바람직한 미래상은 유럽식 클럽 제도에 기반한 엘리트 시스템의 해체, 혹은 개혁이다. 운동을 하는 학생들도 학교 교과 과정에 참여해야 하고, 일정 성적을 얻지 못 하면 시합에 나갈 수 없다. 합숙 훈련은 없어져야 마땅하고 수업을 빼고 시합을 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현재 운동을 하고 있는 어린 선수들은 한국의 입시제도 속에서 일반 학생들과 동일한 양의 공부를 하고 일정 기준 이상의 성적을 내야 하며, 주중 시합이 없으므로 주말과 방학 동안에 수많은 경기를 치러야 한다.
대다수 체육인들은 이 제도 도입이 시기상조이며,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선수나 학부모를 제외한 국민 대다수는 폭력으로 점철된 엘리트 스포츠계의 잘못된 관행을 바꾸기 위해서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체육계는 소외 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의 엘리트 시스템을 취사 선택할 수 있는 체육 정책 중 하나라고 보고, 이것보다는 일반 생활체육 육성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럽게 프로 선수가 나오게 하는 것이 좋으니, 그쪽 정책을 취하자 라고 제안한다면 문제는 적다. 그런데 현재는 엘리트 시스템을 없어져야 할 사회악으로 보고 유럽식 클럽제도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이는 체육 분야에 헌신해 온 모든 지도자들과 일생을 바쳐 운동을 해 온 선수들에게 매우 부당한 생각이다.
바이러스로 인해 강제 동면에 들어간 우리 체육계는 앞으로의 미래상을 위해 무엇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하나의 방안을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여론으로 형성하고 정책을 집행하는 정부에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에 대해서 수동적으로만 대응하면서 미래에 대한 새로운 제안을 제시할 수 없다면, 엘리트 스포츠를 악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아무 조치도 하지 못할 것이며, 대한민국의 체육계는 후퇴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위축된 체육계에 생존 가능성을 높여주는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에 대해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은 유럽의 클럽제 생활체육 환경에서도 여전히 존재한다. 운동에 전념하는 선수들은 학업 시간을 유보하고 운동에 몰두하고 있다.
선수들에게 한국의 입시 환경 속에 들어가 똑같이 경쟁하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주말과 방학 기간에만 몰아서 모든 시합을 하는 것도 경기장 환경상 불가능하다. 그러니 현 상황 속에서 바람직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따라서 선수들에게 적합하도록 언어와 인문사회학 정보 위주로 재편한 별도의 교과 과정을 마련하고, 그들에게 해당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교사진을 육성할 것을 제안한다.
개인 종목 선수들을 위해서 몇 개의 체육학교가 있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이 참여하는 단체 종목 선수들은 체육학교에서 운동하지 못 하고 지역 연고제에 따라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있다. 그러니 그들에게 제공하는 별도의 교육 과정을 위해 순회 교사 시스템이 필요하다.엘리트 시스템은 생활 체육을 근거로 한 클럽 시스템과 양립될 수 있는 방안이다. 이에 대한 보다 긍정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선수들에 대한 지도자의 폭행 사건들은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바람직한 지도법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 한 현실에도 원인이 있다. 지도자들에 대한 지도법 교수 과정을 신설하고, 그들에게 더 효과적이면서도 비폭력적으로 선수들을 이끌 수 있도록 노하우를 전수해야 한다.
기타 체육계에 산적한 여러 문제들이 있지만, 이를 타개할 방안을 논의하는 주체도 없고, 그것을 이끌어갈 역량있는 지도부도 없다. 따라서 대한체육회가 밀어 닥치는 대회를 주관하는 행정적 역량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고, 앞으로는 미래의 대한민국 체육계를 위한 청사진을 마련하고 그것을 정부 유관기관과 적극적으로 논의해 나가는 성격으로 발전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체육계가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숙고를 거듭하고 바람직한 미래상에 대한 중의를 모은다면, 이 시기는 낭비되는 강제 휴식기가 아니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